"팀장님 저 육아 휴직하겠습니다."
"그래? 얼마나 하려는데?"
"1년 하려고 합니다."
2020년 2월 초 드디어 팀장님께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보고했다. 육아휴직을 처음 생각한 게 19년 겨울이었으니까 근 3개월을 고민하다 말을 꺼낸 것이다. 말을 내뱉기까지는 고민의 연속이었지만 뱉은 후에는 속이 후련해졌다. 보고하기 전 가슴이 콩닥콩닥 하던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드디어 하는구나.'
'괜히 직장에서 찍히는 거 아닐까?'
'올해가 진급 케이스인데 당연히 진급은 밀리겠지?'
'옆 사람한테 민폐일 텐데...'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일을 내기까지 주변의 여러 사람의 얘기도 들어보고 나름 육아 선배들의 유튜브 영상도 많이 찾아보았다. 모두 무조건 하라는 내용이 많았는데 당사자가 되고 나니 휴직을 결정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회사에 보고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육아휴직의 계기
육아휴직을 처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아내의 창업 때문이었다. 사실 육아휴직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는데 아내가 창업을 하면 아이들을 케어할 수 없으니 일에 적응할 때까지 휴직을 해서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핑계가 시작이었다.
의욕 없이 무작정 쉬고 싶기도 하고 아이들을 어린이집 보내고 남는 시간에 유튜브 같은 부업을 해보고 싶은 건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희망이었다.
아내도 창업 후 아이들을 케어하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을 텐데 남편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돌본다고 하니 경제적으로는 부족할지언정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이것뿐이었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사업소득이 얼마 이상은 되어야 한 달을 버틸 수 있다는 둥, 얼마 이하가 되면 회사에 다시 복귀 해야 된다는 둥 휴직기간 동안 벌어질 가계 경제 상황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아니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육아휴직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조건중 하나가 최소한의 생활비이기 때문이다.
생활비 확보를 위한 얘기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우리는 언성이 높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는 이왕 투자한 사업이니 열심히 달려서 성공해 보자는 생각이 강했고, 아내는 해보고 잘 안되면 다시 복귀하자는 쪽이었다. 아무래도 필자는 사업을 꿈꾸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대박에 대한 환상이 있었을 것이고 아내는 첫 사업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큰데 남편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니 부담감이 많았을 것이다.
< 육아휴직 급여 >
참고로 육아휴직 후 1년 동안은 고용보험공단에서 육아휴직급여가 나온다. 첫 3개월은 150만 원 한도의 75% (112만 원), 나머지 9개월은 120만 원 한도의 75% (90만 원). 나머지 25%는 직장에 복귀하고 6개월 후에 일괄로 지급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업이 안 될 경우에 대비하면서 결국 의견 차이가 발생하였다. 필자는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티자고 했지만 아내는 원래대로 복귀하자고 했다. 계속되는 대립에 의견 차이를 좁히기 힘든 나머지 해결방안으로 휴직을 끝내고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합의했다. 그 이유는
휴직을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에게 없어선 안될 것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욕심도 포함되어 있고 아빠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에 복귀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경제력을 회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래서 세 가지 정도의 규칙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1. 아이와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자.
2. 사업을 꼭 성공시키자.
3. 최소한의 생활비 확보가 되지 않는다면 회사에 복귀한다.
회사에 알린 후
회사에 육아휴직을 통보한 다음부터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았다. 정말 모든 날이 좋았다. 10년 동안 회사생활을 해 왔는데 1년을 쉰다니! 물론 상황에 따라 복귀할 수도 있지만 일단 1년을 쉰다는 것 자체로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전역을 며칠 앞두고 남은 날짜를 세는 군인처럼 시간은 잘 가지 않았지만 1년 동안 무엇을 해볼까. 뭘 해서 대박을 내볼까 하는 기분 좋은 고민이 하루에도 수천번씩 들었다.
물론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나랑만 있어도 괜찮을까? 밥은 어떻게 먹일까? 하는 등의 우려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계속하면 할수록 마음속에 남은 단 하나의 질문은 바로 "내가 1년이라는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는 건 아닐까?"였다.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육아를 하고 아내의 사업을 돕는다는 게 그냥 집에서 허송세월만 보내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들뜬 마음을 다잡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무엇을 할까...?
결론은 유튜브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딸 둘. 당시 5살 3살. 가장 이쁘고 애교도 많았던 시기였기에 영상으로 남기는 걸 목표로 삼았다. 겉으로는 1년을 잘 기록해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빠가 노력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고 속으로는 유튜브가 돈이 된다기에 나의 능력보다 아이들의 모습으로 어필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육아휴직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있었다. 육아에 대한 진심, 쉬고 싶은 욕심, 성공에 대한 갈망 등. 복합적인 이 기분을 몇 가지 단어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찌 됐건 물은 엎질러졌고 앞으로든 옆으로든 뒤로든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2020년 3월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난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모를 휴직에 들어갔고 내 입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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